[예술] 감정미술관 20. 남의 감정을 옮기는 일
| [감정과학 예술 칼럼] 감정미술관 20. 남의 감정을 옮기는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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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빈아
• 문화교차연구소 연구위원
• 감정과학 예술 연구원
“학문의 기쁨만을 주고받읍시다.” 요즘 교수님께서 종종 말씀하십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물질적인 주고받음을 조심해야 한다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소속된 곳이 학교이기에,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공부의 기쁨을 나누고, 때로는 사유가 잘 풀리지 않는 슬픔도 나누는 학문의 공간에서, 필요한 태도에 관한 말로 생각했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말은 다르게 확장되었습니다.
저는 실수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할 것이 참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입조심’이지요.
저의 ‘입조심’은 말을 적게 하라는 것도, 말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에요.
저의 태도에 관한 문제입니다.
사실 저에게는 고민이 있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홀로남곤 했습니다.
애쓰다. 상처를 주고받다. 떠나다. 이것이 저의 한 부분입니다.
당시 저를 돌아봅니다.
누군가를 돕고 싶었고,
오해를 풀어주고 싶었고,
관계가 좋아지기를 바랬습니다.
함께 잘되길 소망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설명했고,
더 많이 말했고,
때로는 누군가의 마음을 대신 전했습니다.
그들의 감정에 예민했고, 나의 감정은 최대한 숨겼습니다.
그것이 선의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이제 압니다. 나의 행위들이 남에게 늘 좋은 결과를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살면서 저의 생각과 감정은 얼마든지 수다 떨어도 되겠죠.
기뻤던 일, 슬펐던 일, 부끄러웠던 일, 깨달은 일 등...
이것은 나의 감정이고, 나의 인식이며, 나의 삶에서 일어난 진실이기에,
수다스럽게 말하고 안하고는 단지 저의 문제로 국한됩니다.
그런데 저는 최선을 다한다는 이름으로, 남의 감정을 너무 많이 이야기 했습니다.
누군가의 감정을 대신 말하면서, 그 사람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하니 그것은 감정의 주인을 흐리게 만드는 일입니다.
감정은 옮겨지는 순간, 이미 조금씩 변하거든요.
말하는 사람의 해석이 붙고, 듣는 사람의 판단이 섞이고, 원래의 감정은 다른 모양으로 전달되는 것이죠.
남의 생각과 감정은 나와 분명히 다릅니다.
내가 들은 말, 내가 본 표정, 내가 짐작한 마음, 내가 대신 설명하고 싶은 그들의 사정까지, 모두 내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 사람의 몸이 아니고, 그 사람의 마음도 아니며, 그 사람의 시간을 살아본 적이 없었는데...
감정을 옮기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침범이었습니다.
저의 사유에서 학문으로 조금 들어가 볼까요?
여기서 말하는 감정은 단순한 정보나 기분이 아닙니다.
감정은 한 사람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난 변화이고, 자기 안에서 스스로 인지한 본인만의 고유한 진실이고, 한 사람의 존재 방식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감정을 말한다는 것은 타인의 존재 변화를 내가 대신 해석하는 일이고, 타인의 기쁨과 슬픔, 불안과 상처, 망설임과 침묵을 내가 안다고 여기는 일입니다.
스피노자의 말로 하자면, 감정은 신체의 변용과 그 변용에 대한 관념입니다.
감정은 한 사람이 세계와 만나며 자신의 존재 능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주는 내적 지표라는 이야기입니다.
퇴계 이황은 “심통성정(心統性情)”이라 했습니다. 마음이 내 본성의 진실을 인지하고, 매 순간 일어나는 감정들이 본래부터 성스러운 생명의 질서 안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감정을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또는 감정을 억누르라는 것도 아닙니다.
나의 감정이 어디에서 일어났는지, 그것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감정을 온전히 아는 것, 이것이 내가 남들과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학문의 기쁨만을 주고받읍시다.”
저에게 이번 깨달음은 바로 여기에 닿아 있습니다.
나의 감정은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의 감정은 말하기 전에 멈추어야 합니다.
나의 깨달음은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의 사정은 함부로 설명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의 부끄러움은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의 상처를 내 말의 재료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침묵의 문제가 아니라, 경계의 문제입니다.
좋은 관계란 대신 말해주는 관계가 아닙니다.
좋은 마음이란 대신 해결해 주려는 마음도 아닙니다.
때로는 대신 말하지 않는 것이 더 깊은 배려이고,
옮기지 않는 것이 더 정확한 존중이며,
모른다고 남겨두는 것이 타인의 감정을 지켜주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제가 해야 하는 것은 나를 말하고, 조심스럽게 듣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감정을 정확히 아는 일입니다.
입조심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침묵이 아니라, 타인의 감정을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입조심은 관계를 끊는 일이 아니라, 관계를 더 맑게 두는 일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감정을 연구하고 예술로 살아가려는 제가 가장 먼저 지켜야 할 태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