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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정말로 예술을 천시했을까?" 니체 이래 서양 미학사는 플라톤을 '예술의 적'으로 규정해왔으며, 이 규정은 단토, 네하마스, 포터 등 상이한 배경의 학자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확인되어 하나의 정설로 굳어졌다. 나는 이 2,400년 된 합의에 의문을 제기하며, 세 명의 핵심 학자, 네하마스, 할리웰, 그레틀라인의 논증을 축으로, 플라톤 원전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수행한다. 네하마스는 플라톤의 비판 대상이 '예술' 자체가 아니라 진리의 권위를 참칭하는 대중적 퍼포먼스였음을 논증하고, 할리웰은 플라톤 저작 전체에서 미메시스가 단일한 부정적 개념이 아니라 복수의 의미 층위, 즉 인격적 동화, 외양 복제, 자연의 모사, 이데아를 본뜬 자기 형성, 상기의 매개를 갖는다는 것을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그레틀라인은 플라톤의 미적 경험 분석이 현대 인지과학(체화된 인지, 신경가소성, VR 심리치료)에 의해 사후적으로 확인되고 있음을 논증했다. 이후 나는 국가 텍스트 내부의 반증으로, 소크라테스의 호메로스에 대한 사랑의 고백(595b), 시의 변호에 대한 열린 초대(607c-d), 찬가와 찬양의 허용(607a)을 통해 '예술의 천시'라는 독법이 텍스트의 전체를 반영하지 못했음을 확인한다. 『향연』의 디오티마 연설과 파이드로스의 아름다움론은 감각적 경험이 이데아에 이르는 필수적 통로임을 보여주는데, 스피노자의 인식론이 이 통로의 존재론적 근거를 제공한다. 이상의 논증을 종합하여 나는 플라톤에 대한 오독이 범주의 역투사(네하마스), 개념의 단일화(할리웰), 태도의 곡해(그레틀라인)의 세겹으로 구성되었음을 밝힌다. 이를 통해 플라톤이 정말로 거부한 것은 예술 자체가 아니라 ①이데아(理)를 모르면서 ②외양만 복제하고 ③그것으로 진리의 권위를 참칭하는 특정한 예술적 행위였음을 논증한다. 끝으로 퇴계 이황의 이기론(理氣論)을 통해 플라톤의 이데아와 감각 분리가 야기한 존재론적 난점을 해소하고, 미메시스(외양의 복제)에서 현시(顯示)로의 전환 가능성을 제시한다. 경(敬)을 통해 이데아(理)를 발견하는 예술은 플라톤의 비판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철학자에게 요구한 미메시스인 이데아를 본뜬 자기 형성의 예술적 등가물이다. 따라서 플라톤은 예술을 천시하지 않았다.
전문 보기 (교보문고) ↗본 연구는 동아시아 유교 전통에서 인간 형성의 핵심 개념으로 이해되어 온 수양(修養)을 감정과학의 관점에서 재정립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수양은 마음을 닦고 인격을 기르며 욕망과 감정을 의지력으로 절제하는 도덕적 실천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본 연구는 수양을 감정 억제 및 조절 또는 자기 통제의 문제가 아니라, 성리(性理)로부터 정리(情理)의 필연성을 인식하는 사(思)와 정리(情理)에 근거하여 매순간 드러나는 정기(情氣)의 리발기수(理發氣隨)를 확인하는 학(學)이 교차하는 감정과학의 사여학(思與學)으로 정립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성학십도(聖學十圖)』 제4도 「대학도(大學圖)」와 제6도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먼저 「대학도」의 수신(修身)과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통해 수양의 '수(修)'를 밝힌다. 감정과학의 관점에서 '수'는 합리기(合理氣)의 성(性)에서 몸 자체의 본성인 성리(性理)를 인식하고, 그 성리(性理)에 근거하여 몸의 변화로 드러나는 감정 그 자체에 고유한 본성으로서 정리(情理)를 인식하는 사(思)이다. 다음으로 「심통성정도」는 수양의 '양(養)'을 해명하는 근거가 된다. 「심통성정도」의 성발위정(性發爲情)은 성(性)이 발하여 정(情)이 된다는 점에서, 감정이 본성과 무관한 우연한 심리 반응이 아니라 성리(性理)가 정리(情理)로 드러나는 필연적 사건임을 보여준다. 또한 리발이기수지(理發而氣隨之)는 합리기(合理氣)의 정(情)이 자기 안의 정리(情理)를 인식하고, 그 정리(情理)에 근거하여 자신의 정기(情氣)가 순수지선(純粹至善)으로 존재함을 이해하는 감정의 자기이해 구조를 밝힌다. 이 논리에서 수양의 '양(養)'은 정(情)이 자기 안의 정리(情理)에 근거하여 정기(情氣)의 순수지선을 이해하고, 감정의 순수지선(純粹至善)을 통해 다시 자기 몸의 성리(性理)를 확인하는 학(學)이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수양이 성리(性理)로부터 정리(情理)의 필연성을 인식하는 사(思)와, 정리(情理)에 근거하여 매순간 드러나는 정기(情氣)의 리발기수(理發氣隨)를 확인하는 학(學)이 교차하는 사여학(思與學)임을 밝힌다. 이로써 수양은 인간을 외부의 도덕 기준에 맞추어 완성시키는 의지적 훈련이 아니라, 매순간 새롭게 변화하는 몸과 감정 안에서 리발기수(理發氣隨)의 필연성을 확인하는 감정의 자기이해로 이해된다. 수양은 결핍된 인간이 완성에 도달해 가는 과정이 아니라, 매순간 드러나는 감정의 순수지선(純粹至善)을 확인함으로써 몸의 순수지선(純粹至善)을 함께 확인하는 일이다. 이 자기 완전성을 확인하는 기쁨은 감정과학으로 이해하는 수양의 공효이다.
전문 보기 (교보문고) ↗본 연구는 기복(祈福)과 주술적 욕망의 산물로 치부되던 민화를 장재(張載)와 퇴계 이황(退溪 李滉)으로 이어지는 성리학 사유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주관적 영역에 머물던 인간의 정서를 논리적으로 증명되는 학문적 영역으로 다루는 감정과학적 접근법을 통해 그 본질을 명석하게 규명하고자 한 시도이다. 오늘날 대중문화와 미술 시장에서 민화는 대개 벽사나 구복 행위라는 외적 조건에 감정을 의탁하게 만듦으로써 주변 환경의 변화에 끊임없이 흔들리는 수동적이고 취약한 심리 상태를 고착시키는 한계를 지닌다. 이에 본고는 민화 그림의 심층에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을 다스리고 정서적 능동성을 확보하려는 고도의 인지적·철학적 성찰이 내재되어 있음을 성리학적 사유를 기초로 스피노자(Spinoza)의 정서론을 교차 검증하여 증명하였다. 연구의 핵심적인 결과는 두 가지 단계의 정서적 흐름으로 요약된다. 첫째, 성학십도(聖學十圖) 제2도 「서명도(西銘圖)」의 기저를 이루는 '물오여야(物吾與也)'와 '리일분수(理一分殊)'의 자각은 세상 만물과 내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지하는 능동적 시선의 출발점이다. 〈까치호랑이(호작도)〉와 〈화조도·초충도〉에서 포착되는 대등한 공존과 유기적 상생의 구도는 감상자로 하여금 주변 환경을 위협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 속에 존재하는 필연적 주체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주체적인 경(敬)의 인지 상태, 즉 직관지(直觀知)를 유도한다. 둘째, 피할 수 없는 유한성 앞에서도 내면의 평온을 유지하는 「서명(西銘)」의 '몰오녕야(沒吾寧也)' 시각은 소멸의 공포라는 수동적 정서를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정서로 전환하는 핵심 동력이 된다. 모든 만물에 내재된 영원한 자연의 성품을 시각화한 〈십장생도(十長生圖)〉는 감상자에게 개체의 소멸이 결코 자연의 단절이 아님을 직관하게 하여 존재론적 안도감을 획득하게 한다. 결과적으로 민화 속 도상들은 일차원적인 기원의 부적이 아니라, 삶과 죽음 모두를 담담하게 긍정하고자 했던 능동적인 시각적 태도의 산물이다. 본 연구는 철학적 이론에 머물던 성리학 사유를 구체적인 시각 매체와 결합하여 실천적 향유 양상을 미술학적으로 구체화하는 한편, 감정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하여 회화가 지닌 인지적 가치를 현대 학술 어조로 증명해 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비록 주로 〈십장생도〉에 집중하여 또 다른 대표적 화목인 〈까치호랑이〉의 무속적 소비 한계를 후속 연구의 과제로 남겼으나, 본 연구가 제안한 분석의 틀은 민화를 감정 전환의 매개체로 바라보는 시선을 확장할 것이다. 나아가 화면 속에 담긴 능동적인 시각적 태도를 명석하게 읽어내고자 하는 이들에게, 민화는 오늘날 여전히 내면의 불안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주체적인 감정의 자유를 안내하는 단단한 통로가 되어줄 것이다.
전문 보기 (교보문고) ↗본 연구는 소수(素數)가 1과 자기 자신만을 약수로 가지는 수라는 본성에 착안해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으로 나누는 분석의 개념으로 소수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소수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수로 나눠지지 않는다. 오직 유일하게 자기가 자기 자신만으로 나눠지기 때문에 자기 안에 자기의 존재를 본질로 갖는 '자기원인'의 사유를 가지며 또한 자기 존재에 대한 개념을 자기 안에서 자기 스스로 형성하는 '실체'의 개념을 갖는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본 연구는 스피노자의 『윤리학』 제1부 정의 1과 정의 3, 정의 7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먼저 스피노자 『윤리학』 제1부 정의 1을 통해 '자기 원인'의 개념을 이해하고 이 이해를 통해 '나'의 존재를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생각 안에서 이해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또한 이것은 스피노자 『윤리학』 제1부 정의 3을 통해 자신 안에 있으며 자신에 의하여 생각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실체'의 개념으로 증명된다. 자연수 안에서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으로 나누고 항상 1의 결과값을 얻는 소수의 증명은 자기가 자기를 나눈다는 개념에 대해 주목하게 한다. 자기가 자기 자신만으로 나눠질 때 항상 1의 결과값을 갖는 소수의 본성은 그 수가 어떤 수든지 항상 1로 존재하는 '영원의 필연성'으로 증명된다. 또한 이 소수의 본성은 스피노자 『윤리학』 제1부 정의 7에서 이 실체는 자신의 필연성에 의해서 존재하고 이것은 강제되지 않고 자유롭다는 것을 증명한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소수가 자기 자신만을 약수로 가지는 수라는 소수의 본성에 착안해 자연수 안에서 '자기 원인'의 개념으로 존재하는 소수를 증명하고 자기가 자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얻은 실체의 값, 1로 존재하는 소수의 본성을 스피노자의 『윤리학』 정의 1, 정의 3, 정의 7로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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